https://wlsxodi.tistory.com/87 의 뒷이야기 같은 이야기
티엔의 몸에 무언가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 알려 진 것은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온 인사담당자는 제 자리 앞에 서있는 아시아 지역 스카우터를 발견했다. 책상위에는 서류철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새로운 능력자를 스카우트 했나? 하고 서류를 펼쳐보니, 그 안에는 사직서와 업무 인수인계 계획표가 들어있었다. 갑작스러운 사표에 멍청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 이를 향해 남자는 덤덤하게 말했다. 좀 더 오래 버텨보려 했는데 한계가 다가오는 것 같군. 그렇게 내보이는 손등 위, 보석이 빛을 받아 별처럼 빛났다.
의사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병이었다. 이미 재단은 저 정체모를 '사랑의 열병'으로 인재를 하나 떠나보낸 전적이 있었다. 겨우 그가 남긴 후유증에서 벗어나 안정기에 접어드는 참이었는데…. 당혹스럽거나, 안타까워하거나, 한편으로 고소해하거나, 슬퍼하는 말들 사이에서 남자는 생각했다. 그러게…. 내 후유증은 남들보다 긴 편인가보군.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천히 주위를 정리했다. 주위에서 입원을 권유하고, 아직 늦지않았다며 치료하자 부탁해도 남자는 일을 했다. 일욕심도, 상승욕구도 있던 남자답게 후임에게 전달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있었다. 그 외에도 남자의 손에서 끝마무리 지어야할 일들도 있었다. 그 옛날,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었을 때에도 그랬듯이 재단에는 일은 많았고 사람은 부족했다. 남자는 간혹 인수인계를 하다가, 서류를 작성하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럴때는 꼭 남자의 몸에 새로운 별이 돋았다. 별이 움트고 나면, 그렇게 피어나고 나면 남자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봄이 다 지나고서야, 남자는 일을 그만두었다. 여름의 초입이었다.
하얀 시트 위의 몸은 처참했다. 남자가 입원을 결정하자마자 보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계를 모르고 자라났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보석이 온 몸에 가지처럼 자라난 채 병실을 걷는 남자는 간혹 움직이는 산호초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전에도 그랬듯, 여러 사람들이 남자를 설득하고자 했다. 남자는 모든 도움을 소용없다며 거절했다. 하랑은 남자를 굳이 설득하지는 않았지만, 병실을 방문할 때마다 기분이 나쁜 티를 숨기지 않았다. 노을진 물결이 빛나듯 반짝이는 그것들이, 남자가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증거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살과 내장을 뚫고 자라나는 그것들을 견뎌내느라, 굳건했던 남자가 헐떡일때마다 더욱 그랬다. 한참을 구토하는 남자의 등을 두드리며 하랑은 남자가 기왕 무언가를 하나 포기해야했다면,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목숨이 아니라.
누가 독한 사람 아니라고 할까봐, 사랑 한번 독하게 하네.
남자는 그 말이 결코 비꼬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이전의 남자가 그랬듯이. 남자는 두어번 더 속을 비워냈다. 옆에서 하랑이 물을 건넸다.
사랑이라…. 이게 사랑인가?
물을 마셨음에도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져있었다. 하랑은 헛소리 할 체력이 있다면 치료하는 데 힘써보라며 짜증을 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여전히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그게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덩어리라고 했지만… 남자에게는 시리도록 차가운 얼음 같았다. 남자의 이성도, 사고도, 그를 이루는 모든것을 얼리고도 모자라 쌓이는 만년설이었다. 남자는 그의 몸에 있던 불덩어리를 씹어 삼켜버린다면, 이 혹한도 녹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그가 남기고 간 겨울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간혹 거울에서 그처럼 새까맣게 변해버린 눈을 볼 때면, 뭉툭하게 잘린 손끝이 상처로 얼룩달룩 한 것을 볼 때면 선득하게 찬바람이 불고 지나갔다. 이런것이 사랑인가? 죽어가는 짐승처럼 남자는 숨을 찬찬히 몰아쉬었다. 이런것이….
사랑일리 없어요.
찬바람 속에 갇혀 갈 데 없이 맴돌던 말이 답하듯 마음을 스쳤다.
결국 남자는 여름이 다 지나기 전에 숨을 거뒀다. 여전히 그 선택이 로맨틱한지, 멍청한것인지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세간이 어떻게 논하든 상관없이…본인의 의사에 따라 티엔 정의 시체는 불에 태워져 곱게 빻여 한 줌의 재로 변할 것이었다.
단 한 조각도 남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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