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 안했길래 해보는 2016년도 12월에 쓴 단문
마틴 챌피는 티엔 정을 좋아한다.
하랑은 그 사실을 당사자들보다도 먼저 빠르게 눈치챘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남자의 시선의 끝이 늘 티엔 정을 향했듯이, 하랑의 시선은 늘 남자를 향하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감정을 깨달은 뒤로 남자는 누구보다 능숙하게 그 감정을 숨겼기 때문에 기실 그것을 아는 것은 남자와 하랑 단 둘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비참한 진실은 늘 하랑의 마음을 난도질했으나, 동시에 단 둘만이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만족감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또한 지금까지 지속된 기묘한 관계의 시작점이 되어주기도 했으니, 칼날과도 같은 사실은 외려 달콤한 독이 되어 하랑의 마음에 흘러내렸다.
나랑 가짜연애할래?
시작은 이랬던 것 같다. 남자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사부를 좋아한다는 거, 알고 있어. 과도한 긴장감에 하랑은 바로 남자의 앞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어떠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울렁이는 것 처럼 시야도 같이 울렁였다. 하랑은 그 울렁임에 떠밀려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나랑 연애하자. 사부가 질투할 정도로. 마음이 급하니 몸이 절로 앞으로 기울었다. 하랑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침착하게 다듬으며, 바로 지척에 있는 마틴의 눈을 보고 말했다. 그래서 형을 돌아볼 정도로…
…나를 이용해, 형.
대체 그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하랑은 절대 알 수 없었으나 남자는 영원과도 같은 찰나의 침묵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유같은건 중요치 않았다. 그것이 이해득실의 계산을 끝마친 남자의 답인지, 아니면 바보같을 정도로 떨리던 목소리에 대한 싸구려 동정인지는 몰라도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거짓일지라도 달콤하게 내려앉는 목소리가, 애정으로 가득한 눈동자가, 손끝과 입술에 마주닿는 온기가 하랑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언젠가 끝이 날 것을 알았기에 더욱 애가 닳고 소중했다. 모든 마음과 시간을 거짓 온정에 쏟는것만으로도 모자랐다. 아무래도 좋은 이유에 마음을 쓸 시간따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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