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챌피가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막 샤워를 하기위해 물을 뒤집어 쓰고 있던 와중에 손톱 끝에 딱딱한 무언가가 걸렸다. 마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목덜미 뒤를 더듬었고, 손끝에 와닿는 감각이 제 착각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틴은 세면대 위의 거울을 이용해 제 목덜미를 비추어보았다. 목 뒤, 척추로 이어지는 툭 튀어나온 곳 위로 새까만 것이 돋아나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도, 그 옆에도. 거진 어깨 전체에서 밤하늘의 별과 같이 여기저기서 빛나고 있었다.
마틴은 그것이 최근들어 발생하기 시작한 병이라는 것을, 몇명의 의사를 거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최종 종착지인 까미유 데샹은 마틴에게 여러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최근 몸에서 광물이 돋아나는 환자들의 증상이 학회에 보고되고 있다는 것과, 발생 원인이나 감염 경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증상이 심해지면 겉 표면의 광물이 커질 뿐더러 그것이 내장까지 궤뚫고 자라난다는 것과…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이루어지면 완치된다는 이야기가 있더군.
…불완전한 치료법까지.
모든 이야기를 들은 마틴은 그 소위 유일한 치료법이라는 것을 무시하는 쪽을 택했다. 아니, 진단 자체를 무시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사랑이라니, 그런 불완전하고 불투명한 감정으로 씻은듯이 치유되는건 동화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마틴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 처럼 일상으로 돌아왔다. 등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별들을 잊기 위해 더욱 더 일에 매달렸다. 다행히도 재단은 항시 유능한 인재들의 부족에 시달렸고, 마틴의 손길을 원하는 일거리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마틴은 하루종일 일에 파묻혀 살았고, 고단함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할 만큼 자신을 몰아붙이고 기절하듯 잠에 드는 생활을 반복했다. 이어 피로조차 구제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찾아오기도 했으나 마틴은 곧 수면제와 진통제라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갔다.
가을이 되면서 마틴의 옷차림은 서서히 바뀌어갔다. 팔꿈치 위까지 걷고 있던 소매는 점점 아래를 향하더니 9월 말에 접어들자 손목까지 내려왔다. 발목을 훤히 드러내던 바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제 마틴의 몸에서 하얀 피부가 드러나는 부위는 꽉 채운 카라 깃 위의 얼굴과, 장갑사이로 언뜻 보이는 손등과 손가락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달라진 그의 복장에 의문을 제기했으나, 마틴이 나이를 먹으니 추위를 타게 된다며 너스레를 떨자 의심들은 부지불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 모든 임시처방들도 결국 겨울까지였다. 해가 바뀌고 마틴은 휴가를 신청했다. 모두들 그간 열심히 일했으니 그정도 보상은 받아도 된다며 마틴의 휴가를 환영했다. 그러나 복귀일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마틴은 돌아오지 않았다. 못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처음 마틴을 발견한 것은 재단의 스카우터였다. 연락도 받지 않고, 집에 찾아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말에 남자가 솔선수범해 찾아가기로 했던것이다. 마틴 챌피 그 이가 아무말도 없이 무단결근을 할 이는 아니었을 뿐 더러, 이러니 저러니해도 조금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잠겨져 있는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간 집은 엉망진창이었다. 난장판을 헤치고 들어간 안은 커튼이 꽉 닫혀 있어 아무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이었다. …마틴? 조심스러운 부름에 방 한가운데 둥글게 뭉쳐져 있던 덩어리가 대답하듯 떨렸다.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에 남자는 긴장으로 몸을 굳혔다. 무언가 이상했다. 남자는 한발자국 더 다가가는 대신 불을 켜려 손을 뻗었다.
안돼요!
불이 켜지며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그자리에 얼어붙었다. 몸을 웅크리고 고개만 든채 독이 오른 눈빛을 쏘아붙이는 마틴의 몸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마치 별하늘을 옮겨온 듯한 모습이었다.
환한 빛 아래에서 본 몸뚱아리는 더욱 처참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마틴의 몸에는 뿔처럼 검은 돌이 돋아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돋아난 돌들을 칼로 후벼파낸 흔적이 이곳저곳에 존재했다. 어느 하나 멀쩡한 곳이 없었다. 그러나 몸을 뒤덮은 것으로도 모자라 얼굴까지 스물스물 올라오는 별들은 그의 생명을 빨아 먹은 만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살과 내장을 뚫고 자라나는 돌의 고통에 헐떡이는 마틴을 두고, 까미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라며 진통제를 놓았다.
유일한 치료법은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는 것 뿐이라는 말을 듣고, 주위 사람들은 마틴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대체 누구냐, 우리가 도와주겠다. 사람이 이렇게 죽어가는데 상대도 무언가 해주지 않겠나. 모든 말에 마틴은 침묵으로 답했다. 심지어 그 브루스 보이틀러마저 마틴을 설득했으나, 마틴은 독하게 이를 악물고 모든 고통을 씹어 삼켰다.
마틴은 나날이 수척해져만 갔다. 안에서 피어나는 별들에 피를 토해내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헛된 감정을 버리지 못하고 그를 찾아왔다. 그것은 희망이기도 했고, 현실도피이기도 했고, 동정과 연민이기도 했으며…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무언가이기도 했다.
티엔은 그들 중 유일하게 마틴을 설득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묵묵하게 마틴의 곁을 지키며 맡은만큼 간호를 했다. 그들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이들 모두가 놀랐지만, 해묵은 감정따위는 이제와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다. 티엔은 나올 것이라곤 피가 섞인 위액이 다 임에도 끊임없이 헛구역질을 하는 마틴의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사랑 한번 독하게 하는군.
결코 비꼬려는 의미는 없었다. 그 말을 뱉은 이유에 특별한것은 없었고, 굳이 따지자면 순전히 느끼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었다. 책을 읽고 난 뒤 감상을 뱉는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마틴은 구역질을 멈췄다. 눈동자 안에서 시퍼런 불꽃이 일렁였다.
사랑?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가 활활 타올랐다.
사랑이라고?
당신이 뭘 아는데? 새까맣게 변해버린 안구에서 피눈물이 줄줄 흘렀다. 내 이성도 사고도, 나라는 존재를 모조리 불살라먹는게… 토하려고 해도 뱉을 수 없이, 속을 다 태워버리는 것 같은 이 불덩이가. 뭉툭한 손끝이 한겹 옷자락 위를 긁었다. 차라리 내 뱃가죽을 갈라 집어 꺼내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은 이게…. 이런게 사랑이라고? 죽어가는 짐승이 마지막으로 울부짖는 것 처럼 마틴이 절규했다. 이런건 사랑이 아니라고요. 한참을 씨근덕거리던 마틴이 입에서 맴돌던 말을 짓씹듯이 내 뱉었다. 이런것이….
사랑일리 없어요.
단 한 조각을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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