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랑의 인생은 길지 않았지만, 그 짧은 삶은 지루함으로 가득차있었다. 무채색은 덤이었다. 기억할 수 있는 순간부터 세상은 온통 검고 하얀색으로 얼룩덜룩했다. 하랑은 그래서 동무들이 난리치며 이야기하는 봄꽃의 화사함에도, 얼어버릴것 같이 시원한 파란 계곡에도, 곱디고운 꽃신에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놀랄만큼 재미없는 세상에서 하랑이 관심을 붙일 만 한 것은 자신의 주위를 맴돌며 속살이는 령들 뿐이었다. 이 지루함을 깨부숴줄 만큼 강한 힘을 주겠다는 말에 하랑은 손쉽게 넘어갔다. 그뒤로부터는 일사천리였다. 하랑은 점점 더 강한 령들을 제 밑에 두고 부렸고, 지루하기만 했던 일상은 점점 나아지는 듯 했다. 아버지가 그 자신의 령을 떠나보내지만 않았더라도 하랑의 생활은 좀 더 빛났을 것이었다.
하랑이 생각하기에는 쓸데없는 걱정때문에 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는 후일로 미루어졌다. 그러나 강해지는 길은 그뿐만은 아니었기에, 하랑은 다른 방법을 찾아 눈을 돌렸다. 사부 될 남자가 손을 내민 것은 바로 그 시기였다. 스카우터인지 뭐시깽이인지를 한다는 남자는 하랑에게 힘을 더 키워줄 수 있다고 했고, 령이 했던 제안을 받아들였듯이 하랑은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바로 지금 하랑이 배를 타고 낯선 타국 땅에 도착한 이유였다.
여러날에 걸친 바다여행에 하랑은 없던 배멀미도 생길 지경이라며 욕을 했다. 어딜 바라봐도 망망대해만 펼쳐져있었다. 색이라도 있었으면 나을 법 했으나, 하랑의 시야에는 검고 검은 잔물결만이 가득했기에 더 심했다. 도착하자마자 하랑은 누구보다도 빨리 배에서 내렸다. 바다는 이제 한동안 거들떠 보기도 싫었다. 따라오라고 한마디만 던지고 먼저 성큼성큼 걸어가는 사부에 하랑은 냉큼 쌍수를 들며 뒤따랐다. 그러면서도 틈틈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떠나기 전 동무들이 양놈들은 하나같이 눈은 퍼렇고 머리는 노란색이며 커다랗다더라고 말했으나, 하랑은 크다는 것 빼고는 알 수가 없다며 혀를 찼다. 그것 빼고는 딱히 별 다를것이 없어보였다. 뭐, 사람사는곳이 다 그런거 아니겠나. 하랑은 금새 관심을 거두었다.
재단에 도착하고 나서도 하랑은 심드렁한 태도를 고치지 않았다. 하나하나 사람들을 소개시켜주는 것에 대충 응하는 하랑에 사부는 혀를 찼다. 하랑은 그것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이곳에 오면 뭔가 좀 달라질 줄 알았더니…. 여전히 까맣거나 하얗기만 한 세계였다. 아무것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없었을 것이었다.
이 아이가 그 아이인가요?
사내놈인데도 부드럽게 감겨드는 목소리에 하랑은 감탄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미로운 목소리였다. 계집애들이 꽤나 소리지를 것 같은 목소리구만. 하랑은 하던대로 대충 인사나 하려 시선을 들었다가, 그자리에 멍청하게 굳어섰다.
마틴 챌피에요. 잘부탁해요.
세상이 색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백업 > 샆'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티엔마틴 / 동백꽃() 패러디 (0) | 2016.07.18 |
---|---|
마틴른 / 마틴 장례식 이야기(매우 단문) (0) | 2016.07.18 |
티엔마틴 / 마틴 몸에 보석이 돋아나는 이야기 (0) | 2016.07.18 |
티엔마틴 / 도저히 그 단어가 나오지 않는 마틴 (1) | 2016.06.02 |
티엔마틴 / 문 앞에 서다 (0) | 2016.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