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안에서 종이봉투가 버스럭거렸다. 하랑은 한팔 가득 저녁거리를 들고 갑작스럽게 터진 일을 욕하며 재단 문을 열었다. 재단의,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조리 서류에 파묻혀 죽어가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일용할 식량을 제공할 수 있는 건 현재 아무런 직위도 가지지 않은 청소년 이하랑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배달을 요청하면 될 것을, 주문할 시간도 아깝다는 사부의 말에 하랑은 재단에서 세 블록이나 떨어진 카페까지 가서 샌드위치 두개와 커피 두잔을 사와야만 했다. 치즈와 베이컨, 그리고 양파를 추가해서.
일을 사랑하는 제 사부는 샌드위치에 뭐가 들어가던 말던 일단 배만채우면 상관없는 인종이었기에, 햄과 계란 토마토와 양상추가 들어간 샌드위치에 쓸모없이 치즈, 베이컨, 양파까지 추가할만한 섬세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혹여나 하랑이 잊을까봐 점심때부터 꼼꼼하게 종이쪽지에 자신의 주문을 써넣어 사부앞으로 전해둔 남자는 아마도 더 없이 간절하게 품안의 샌드위치를 원하고 있을테였고, 자신의 사부는 그렇지 않을테니 하랑은 먼저 남자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
저녁 왔수다.
오, 신이시여!
서류에 머리를 파묻고 있던 남자가 환호성을 내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하랑은 남자의 모습을 보고 저도 놀라 한발짝 물러섰다. 남자는 평소에 답답할 정도로 목까지 단추를 채우고 다니던 단정한 모습은 어디갔는지, 단추를 두어개 풀러내린 구깃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덕에 일자로 쭉 뻗은 쇄골이 아주 잘 보였다. 하랑은 재빨리 시선을 옮겨 연이은 철야로 반쪽이 난, 심지어 듬성듬성 수염이 자라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친…. 하랑은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려는 욕설을 황급히 목 안으로 우겨넣었다. 아니, 씨발. 형이 저렇게 잘생겼던가? 아니, 물론. 재단의 인재 마틴 챌피는 그 상냥한 성격만큼 뛰어난 외모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아, 제 꼴이 이래서….
그리고 혼란스러운 정신에 아주 묵직한 막타가 들어왔다. 미안해요. 피곤해 입꼬리를 올릴 힘조차 없는지 눈만 접어 웃는 모습에 하랑의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삽시간에 얼굴이 달아오른 하랑은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했다.
아, 아니야! 마, 맛있게 쳐먹어!
퍽. 제 가슴에 종이봉투를 집어 던지고는 냅다 줄행랑을 친 하랑의 등을 바라보며 마틴이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어. …네. 고마워요.
쾅! 갑작스럽게 열린 문에 티엔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랑은 문에 기대서서 쿵쾅대는 심장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진정해, 심장아.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 것 같았다. 화끈거리는 양 뺨을 차가운 문에 대고 식히고 있는 와중에 뒤에서 신경질적인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하랑은 뒤를 돌았다. 연일철야로 인해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올거 같은 얼굴이 반쪽으로 줄어들어있었다. 퀭한 눈에 듬성듬성 나 있는 수염. 버석하게 각질이 일어난 입술. 이리저리 구깃한 옷…하랑은 인상을 찡그렸다. 티엔 역시 구긴 얼굴을 펴지 않았다.
뭘 쳐다보나. 저녁은?
상냥함이라고는 한 스푼도 들어가있지 않은 목소리였다. 하랑은 손에 들린 종이봉투를 퍽 소리나게 티엔의 가슴에 던졌다.
여깄수다. 잘 쳐먹으소.
등 뒤에서 노골적으로 불만에 가득한 혀차는 소리가 들렸으나, 하랑은 문을 닫으며 코웃음을 치는 것으로 화답해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둘 다 추레했는데 왜 형한테만…두근거린거지? 하랑은 다시 한번 초췌한 얼굴로 웃던 마틴을 떠올렸다.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하랑은 심장에 손을 올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부정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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