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녹의 소재 멘트는 '열마디 말보다는 한번의 입맞춤을', 키워드는 장례식이야.
아련한 느낌으로 연성해 연성
조금은 쌀쌀한 바람이 부는 늦가을이었다. 뒷정리를 모두 끝내고 하늘을 바라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나서야 빈 교실문을 열었다. 너는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어서와 신타로. 장기판에 말은 모두 제자리에 놓여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너는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나는 너의 맞은편에 앉으며 졸을 움직였다.
열 몇 수 지나지 않아서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던 판세는 어느샌가 역전되어 승기는 너를 향해 기울고 있었다. 어느곳에 장기말을 놓아 내 왕을 잡을지 고민하는 너의 옆모습이 창문을 통해 들어온 노을빛에 붉게 물들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늘 그랬던 것 처럼 다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입안을 맴도는 이 감정을 너에게 전하기 위해서 네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 수많은 말과 감정들 어느 하나도 입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그것들 모두 너에게는 가닿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나는 책상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말이 반쯤 없어진 장기판 위로 내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너는 시선을 들어올렸다. 나는 눈을 내리감고 네 이마 위로 입을 맞췄다. 열려진 창문으로 싸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새하얀 커텐이 펄럭였다. 너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그저 앉아서 내 입맞춤을 받아주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뗐다. 무슨 감정을 담고 있는지 모를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몇번이고 연습했었던 것 처럼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죽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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