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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업/쿠농

황녹 / 꿈조각

 콘티는 다 짰지만 언제 완성할지 몰라서 일단 쓴데까지만.........언젠가는.....꼭.......끝까지......

 인셉션을 보고나서 보고싶었던 황녹으로. 제일 보고싶은 장면은 왜 하필 마지막인걸까




 

 

 미도리마 신타로는 아주 새카만 공간에 홀로 서 있었다. 어째서 이곳에 서있는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 가야겠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보던 미도리마는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면, 자신은 학교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새카만 공간에 키세 료타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자신이 왜 여기에 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빨리 원래 있던 곳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리속을 지배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키세는 제 앞에 있는 새카만 공간에 손을 가져 대고 틈새를 잡아 벌렸다. 이 안에 들어서면,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를.




2

 미도리마 신타로는 가만히 벤치에 앉아있었다. 갑자기 속 안 어딘가에서 기분나쁜 울렁임이 생겼다. 가만히 상체를 숙이고 고개를 떨군채 호흡하는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토할 것 같았다. 속이 안 좋은 것을 눈치 챈 것인지 숙인 등 위로 조심스런 손길이 와닿았다. 조심스레 등을 쓰다듬는 손길에 속이 안정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저도 모르게 미도리마는 등을 쓰다듬는 상대의 팔을 쳐냈다. 애써 쓰린 속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드는 순간 미도리마는 방금 전의 행동을 후회했다. 생판 모르는 남이 당혹스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당혹한 미도리마가 곧바로 사과했다. 상대는 그 사과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초면에 도와주시려 했는데…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중했을터인 사과에 상대는 오히려 손을 내쳤을 때보다 더욱 상처를 받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상대는 그자리에 못이 박힌듯이 굳어서 떨리는 눈동자로 미도리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금색 눈동자가 정처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키세 료타는 제 눈앞에 있는 미도리마 신타로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아는 미도리마 신타로와 아주 많이 똑같았고, 또한 아주 많이…달랐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굳어있는 자신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미도리마의 시선을 그제야 깨달은 키세는 가까스레 입꼬리를 올려 미소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다. 괜찮아요. 저야말로, 키세는 숨을 들이쉬었다. …초면인데 실례했던것 같네요. 초면이라는 단어를 내뱉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미도리마의 등을 보았을때 만큼이나 많은 노력이. 그 등에 손을 얹고 다독여도 되는것인지, 몇번이고 손을 가져다 대었다가 거두어들이기를 반복했다. 눈앞의 상대에게 초면이라는 단어를 내뱉기에는,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파들파들, 입꼬리가 떨려왔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미도리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미도리마는 아무런 흔들림 없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녹색 눈동자가 똑바로 시선을 바주쳐왔다.



3

여, 또 만났네요? 등 뒤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일전의 남자가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자신은 제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의 얼굴은 잘 기억하지 않았다. 하물며 지나가던 행인은 더더욱.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도리마는 고개만 까딱여 인사했다. 하긴, 저렇게 잘생긴 얼굴이라면 자신이 기억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지도 몰랐다. 남자는 정말로 TV에 나올 것 같이 예쁘게 생긴 사람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공이 데굴데굴 굴렀다. 허리를 숙여 공을 집으려는데 저보다 공에 먼저 손을 뻗은 사람이 있었다. 농구공을 잡고 두어번 바닥에 가볍게 튕긴 남자가 웃어보였다. 저랑 원온원 한판 할래요? 몸에 익은 것 같이 익숙한 몸놀림이었다. 미도리마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한판 정도 하는것은 나쁘지 않을것 같았다. 남자는 미도리마에게 공을 던졌다. 먼저 해도 괜찮아요. 그 말에 미도리마가 미간을 찌푸렸다. 얕보는건가? 후회할텐데. 자존심이 건드려져 조금 화난듯한 목소리에도 남자는 그저 웃을뿐이었다. 미도리마는 공을 튀기며 하프라인 근처로 이동했다. 남자는 어느새 바짝 제 옆에 붙어 수비를 하고 있었다. 끈질기게 붙어오는 남자가 짜증났다. 적당히 삼점슛으로 기를 눌러주려 빈틈을 만들어 골대를 향해 공을 던지려는데 일순 손이 허전해졌다. 어느새 공을 뺏은 남자가 빠르게 골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급하게 따라붙으려 했지만 남자의 손에서 공은 골대 안을 향해 던져진 상태였다. 탕. 공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가 미도리마를 향해 웃었다. 이것보다 더 잘하잖아요. 절 얕보는건가요? 



키세 료타는 허공을 가르고 골대를 향해 쏘아져 나가는 농구공을 바라보았다. 농구공이 그리는 포물선의 궤적이 아름다웠다. 코트 중간을 밟고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손을 들고 가볍게 뛰며 공을 내던진다. 손가락 끝에서 쏘여져 나간 공은 그러면 저 높이 치솟았다가 급격하게 목표를 향해 떨어진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고, 깔끔한 포물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의 궤적. 키세는 그 흔적을 넋이 나간듯이 바라보았다. 그래, 이 슛이 그리웠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유일하고 그렇기에 아름다운. 탕. 농구공이 떨어져 코트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당신이야말로 얕보는 것입니까. 미도리마가 농구공을 들고 저를 쏘아보았다. 미도리마가 삼점슛을 쏘기 이전에 공을 쳐낼 찬스는 있었다. 하지만 쳐내지 않았다. 미도리마는 그것에 화를 내고 있었다. 인사를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키세는 웃었다. 아니요. 그럴리가. 농구공을 받아들며 키세는 목까지 쳐오른 말을 삼켰다. 나는 다만, 당신의 슛을 다시 한번 보기 위해 인사를 다할뿐이예요. 손에서 쏘아져나간 공이 링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4.

미도리마는 제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다른 반과의 진도를 맞추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용으로 틀어놓은 영화였다. 아오미네는 자신의 뒷자리에서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아오미네를 흘끗 쳐다본 미도리마는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던 바닷가에 쓸려온 연인이 모래로 미로를 만들고 있었다. 미로를 만든 그들은 이어서 집을 만들고, 거리를 만들고, 도시를 만들고, 사람들을 만들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가짜 현실을 그들은 곧 잊어버렸다. 그들은 곧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 없게되었다. 거짓현실을 진짜라 믿고, 그들 스스로 이곳이 거짓이고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 저편에 묻었다. 미도리마는 눈을 깜빡였다.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당신은 기차를 기다리고 있어. 그게 당신을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당신은 몰라. 하지만 상관없어. 왜지? 지하철 선로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자신의 연인과 손을 맞잡은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여자가 손을 꽉잡고 눈을 감았다. 왜냐면 우리는 함께일거니까. 미도리마가 눈을 깜빡였다. 속눈썹 사이에 엉겨있던 눈물이 떨어졌다.


그곳은 꿈이고, 환상이자 도피처이다. 아카시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미도리마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위로 호흡기가 붙어있었다. 이름모를 기계의 화면위로 잔잔한 파도가 쳤다. 그 파도는 미도리마의 생명이 물결치는 모습이었다. 늘 변함없이 똑같은 모양을 그리는. 깨어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신타로는. 아카시는 중얼거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네. 조근조근한 한마디가 날아들어와 심장에 박혔다. 키세 료타는 죽은듯이 잠든 미도리마를 내려다보았다. 어쩌면, 아니 확실히 그가 깨어나지 않는것은 당연했다. 미도리마의 도피처는 모든것이 현실과 놀라울만큼 닮아있었다. 단 한가지만을 제외하고. 그곳에는 료타가 없으니까. 아카시가 덧붙인 말이 커다란 창이 되어 궤뚫었다. 미도리마의 도피처에는 키세 료타의 흔적따위 없었다. 그런곳이었다.


?

 키세 료타는 우두커니 서서 자신의 손안에 잡힌 공간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던 키세는 이내 제 손아귀에 놓여진 공간을 쥐고 잡아 뜯어냈다. 마치 부드러운 천이 찢겨지듯 찌지직,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공간이 맥없이 튿어졌다. 그 틈새로 환한 빛이 흘러나왔다. 반짝이는 빛무리를 바라보며 키세가 망설이듯 주먹을 꽉 쥐었다. 잠깐 빛과 어둠, 그 경계션에 서있던 키세는 찢겨진 공간의 틈을 무자비하게 헤쳐 벌리고 한발자국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