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샆

새벽의 저주

씨옸 2016. 8. 6. 22:14




하랑은 눈을 떴다. 문득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였다. 아니, 나 왜 깼냐…. 하랑은 짜증을 내며 다시 눈을 감았다. 세시간 뒤면, 새벽부터 아침수련을 해야한다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사부가 자신을 무자비하게 깨우러 올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잠을 자둬야했다. 하랑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씨발….

잠은 오지않았다. 도리어 정신은 또렷해졌다. 자장가도 불러봤고 양도 세봤으며 창밖에 보이는 별도 세다못해 둥둥 떠다닐 먼지도 셌다. 그러나 잠은 오지않았다. 미치겠네, 진짜. 하랑은 결국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기숙사 아랫층에 가서 물이라도 한 잔 마실 생각이었다. 

불을 켜기 귀찮아 복도를 손끝으로 더듬어 가는 하랑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부스럭 대는 소리였다. 시벌, 뭐지. 하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하랑은 귀차니즘에 쩔어있던 자신을 반성했다. 그냥 불을 켜고 왔어야했다. 하랑은 덜덜 떨며 허리춤에서 부적 두어장을 꺼냈다. 여차하면 던지고 도망갈 생각이었다. (기숙사에 있는 다른사람들을 깨워야한다는 선택지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저 멀리 모퉁이 너머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하랑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욕을 했다. 저 너머는 하필 자신의 목적지인 부엌이었다. 하랑은 침을 꿀떡 삼키고 조심스레 한발자국을 딛었다. 모퉁이를 돌자―

 …아, 진짜.

낯익은 금발이 열린 냉장고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것을 보고 하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적이 찢어질 정도로 힘을 주고 있던 손에서 절로 힘이 빠졌다. 하랑은 괜히 쫄았다는 생각에 마틴에게 짜증을 가득 담아 말을 걸었다.

 형! 아니 그냥 당당하게 꺼내먹으면 되지, 뭐하러 불도 다끄고 부스럭부스럭대? 

내가 진짜 얼마나 놀랐는 줄 알어? 어? 하랑이 투정을 부리는데도 마틴은 여전히 부스럭대며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그 이상함에 하랑은 잠시 마틴에게 향했던 걸음을 멈췄다. 이쯤되면 미안하다면서 하랑도 먹을거냐며 먹고 있던 음식을 권해야했다. 하랑은 조심스럽게 마틴을 불렀다.

 …형?

부스럭대는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렵…맛있….
 형?

하랑은 불안함에 뒷걸음질 쳤다. 갑자기 어젯밤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서양에는 좀비라는 귀신이 있는데, 죽은 시체가 살아나서 걸어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또 강시와는 다르게 몸이 썩어가기때문에 가려움에 몸을 긁으면 살점이 후두둑 떨어지고, 닥치는대로 사람고기를 뜯어먹는 괴물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가렵맛있이라니! 가렵맛있이라니!!

마틴이 허겁지겁 먹고 있는것이 사람고기는 아닌가하는 생각에 하랑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러고보니 먹는소리도 무엇인가 촉촉한것을 먹는지 물기가 어려있었다. 하랑은 패닉에 빠졌다. 내가 입사한곳이 그랑플람이 아니라 엄브렐러였던것인가! 종종 사원들이 키우던 작은 화분들은 그냥 관상용 식물이 아니라 해독 허브였던것인가!!

덜그럭,

뒷걸음 치던 하랑의 발이 의자다리를 건드림과 동시에 마틴이 휙 고개를 돌렸다. 입가가 축축하게 젖어 번들거리는 것이 어둠에 익숙해진 하랑의 눈에도 잘 보였다. 마틴이 비틀거리며 일어남과 동시에 하랑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힘껏 내지른 비명소리에 기숙사의 불이 켜졌다. 무슨일이냐!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윗층에서 잠옷을 입은 티엔이 구르듯 달려왔다.

 마, 마틴 형이….

하랑은 덜덜 떨며 마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틴은 흠뻑 젖은 두 손으로 먹다 만 복숭아를 들고있었다. 복숭아?

 아, 아니…. 좀비….
 좀비?
 아니, 형이 근데…가렵…맛있이라고….

나는 그래서, 마틴 형이 좀비가 된 줄 알고…. 횡설수설하는 하랑의 말을 듣던 티엔이 마틴을 바라보았다. 지레 찔린 마틴은 몰래 먹고 있던 복숭아를 뒤로 숨겼다. 그와중에 입가가 간지러운지 손가락으로 살살 긁는 것은 덤이었다. 티엔은 한숨을 내쉬었다.

 복숭아를 제대로 씻지 않았나보군. 그러니까 간지럽지….
 아니, 불끄고 씻어서 그렇죠, 저도 사실 복숭아 잘 씻거든요?
 그럼 불 켜고 씻지 왜 불 끄고 몰래 훔쳐먹나?

누가 훔쳐먹었대요? …그냥 좀 몇개 꺼내먹은거지. 몇개라는 단어에 반응한 티엔이 그제서야 주위를 훑어보니 처참하게 씨앗만 남은 복숭아가 세개는 널려있었다. 티엔은 한숨을 내쉬었다.

 됐으니까 정리하고 씻고 자라.

안그래도 잘거였거든요. 마틴이 투덜대는 소리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티엔은 여즉 굳어있는 하랑의 어깨를 쳤다.

 이하랑.
 어, 어, 응?
 너도 빨리 올라가서 잠이나 자라. 

아직 정신이 빠져있는 하랑을 보고 티엔이 혀를 차며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 새벽 네시다. 두시간 뒤에 보지. 

 어…. 응, 사부 잘자….

그리고 일분 뒤, 위층으로 올라가 제 방 침대에 누운 티엔의 귀에 두시가아아아아안????? 하고 비명을 지르는 하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